[그때그시절] 만화방에서 보던 명랑만화 ‘의사 까불이’를 아시나요?

아이들을 위한 명랑만화의 시작, ‘의사 까불이’에 열광하다

조지연 기자 | 기사입력 2020/07/06 [10:53]

[그때그시절] 만화방에서 보던 명랑만화 ‘의사 까불이’를 아시나요?

아이들을 위한 명랑만화의 시작, ‘의사 까불이’에 열광하다

조지연 기자 | 입력 : 2020/07/06 [10:53]

 

▲ 필명 '경인'으로 활동하던 김경언 작가의 '의사 까불이' 3권 책 표지.  ©제공=한국만화자료원

 

[백뉴스(100NEWS)=조지연 기자] 네이버에서 인기리에 연재를 마친 웹툰 서나래 작가의 ‘낢이 사는 이야기’, 자까 작가의 ‘대학 일기’, 다음 웹툰에서 연재 중인 채유리 작가의 ‘뽀짜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일상을 소재로 하여 만든 일상툰이라는 점이다. 

 

▲ 우스개만화가 명랑만화, 명랑만화가 시간이 흘러 일상툰에 투영되다

 

많은 이들에게 재미와 공감을 선사하는 일상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박인하의 ‘한국 명랑만화 장르의 형성과 발전 연구’(애니메이션연구 8(4), 2012)에 따르면, 일상툰의 효시에는 명랑만화가 존재한다. 

 

박 연구자는 해당 논문을 통해 “1950년대 ‘명랑’이라는 명칭은 밝고 경쾌한 우스개를 포괄하는 명칭으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만화의 경우, 해방과 함께 속속 창간된 여러 잡지에 짧게는 한 페이지에서 서너 페이지에 이르는 우스개 만화들이 발표되었는데, 이런 우스개 만화가 점차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하며, 대중적 내러티브의 정형들을 구축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명랑만화라는 용어가 대중화된 것”이라고 밝혔다. 

 

명랑만화들은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를 거치면서 공통적인 특징을 가졌다. 박 연구자에 따르면 명랑만화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당대의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된 전형적 캐릭터의 창조다. 두 번째는 갈등상황에 보편적 방법으로 대처하여 대중의 공감을 자아내는 방식의 서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당대적 상황을 장르의 정형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 세월이 흐르면서 명랑만화를 비롯 다양한 장르 만화가 생겨났다.  © 조지연 기자

 

마지막 특징은 일상성이다. 박 연구자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로 체계화된 명랑만화는 위의 세 가지 요소를 계승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서사에 일상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명랑만화의 승승장구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만화들이 불법적으로 국내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당시 문방구에서 500원짜리 해적판으로 번역·간행된 일본 만화는 빠르게 명랑만화의 위치를 빼앗았다. 명랑만화는 1990년대에 들어서서 쇠퇴의 길을 걷는다. 

 

명랑만화는 ‘패러디의 1인자’라고 불리던 김진태 작가와 아동을 위한 만화 ‘비빔툰’을 비롯해서 노부부와 기러기 아빠가 된 주인공의 일상을 그린 ‘노부부 이야기’의 홍승우 작가에 의해 계보가 이어진다. 박 연구자는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던 명랑만화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2000년대 웹툰”이라면서 “웹툰은 ‘일상툰’이라는 이름으로 명랑만화가 지닌 일상성을 복원했다.”고 해당 논문을 통해 주장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는 6080시절 만화방을 그대로 재현한 새문안 만화방이 존재한다.  ©제공:돈의문박물관마을

 

▲ 명랑만화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된 그때 그 시절, 추억의 ‘만화방’

 

명랑만화는 비록 1990년대에 들어서서 일본만화에 인기를 빼앗기는 등 고초를 겪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봤을 만한 장르 만화였다. 이렇게 명랑만화가 유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60년대 대중화된 ‘만화방’의 활약이 컸다. 

 

손상익의 ‘한국만화사 산책’(도서출판 살림, 93p, 2005)은 아이들이 만화방으로 모이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재건(再建)과 반공(反共)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 땅의 모든 어른에게 '한 손에 망치, 다른 한 손에는 총'을 들게 했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어린이란 존재는 천덕꾸러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때마침 도시의 골목 어귀마다 문을 연 만화방들은, 방과 후 갈 곳 없었던 우리 어린이들에게 '꿈의 공장' 역할을 했다.’(3.2장)

 

더욱이 당시 텔레비전은 집마다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텔레비전을 보는 휴대용 기기 또한 없었다. 청소년들이 텔레비전을 쉽게 볼 수 있는 장소는 만화방이었다. 텔레비전뿐 아니라 만화방에는 각종 만화책 또한 즐비했다. ‘한 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던’ 만화방은 당대 아이들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 장소였다. 이때, 만화방에서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은 김경언 작가의 ‘의사 까불이’였다. 

 

한편, 만화방은 이후 만화대여점으로 이어진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동네 곳곳에 존재했던 만화대여점은 이제 시간제로 이용 가능한 만화카페로 변모했다. 이제 그때 그 시절 하굣길에 만화방에 모여서 삼삼오오 책을 읽던 아이들의 모습은 옛 추억이 됐다. 

 

▲'의사 까불이' 15권 표지에는 스토리 일부를 상상할 수 있는 그림들이 컷으로 나뉘어 있다. ©제공:코베이옥션

 

▲ 1960년대 어린이 명랑만화의 교과서, ‘의사 까불이’

 

1960년대 이전에도 어린이 명랑만화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김경언 작가의 ‘의사 까불이’만큼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기존의 어린이 명랑만화들은 분명 ‘재밌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재미를 느끼기에는 무언가 부족했다. 

 

이와 관련해 손 저자는 책을 통해 “이전에도 이 분야의 만화 장르는 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웃기는 내용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의 눈높이에서 창작된 근엄한 분위기의 그림 일색이었다.”면서 “(기존의 명랑만화는) 만화 매체가 가진 이미지 전달 측면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경언 작가의) ‘의사 까불이’는 캐릭터의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만화체인 데다, 주인공은 물론 등장 캐릭터들이 그림 칸 속에서 쉴 새 없이 넘어지고 뒹구는 등 슬랩스틱 류의 연출을 시도했다. 당시 어린이들이 온몸으로 만화 보는 재미를 공감했던 이유”라고 전했다.

 

‘까불이’에 매해 등장하는 에피소드들 또한 당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의사 까불이의 서사는 명랑만화의 특징에 걸맞게 의사 까불이와 그의 곁에서 같이 일하는 간호사의 문제해결 과정을 주로 담고 있다. 

 

‘의사 까불이’에 등장하는 갈등이나 문제 상황은 다양하다. 까불이는 약의 개발을 통해 시민들의 고민을 해결한다. 가령, 키 작은 어린이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한 ‘단숨에 키 크는 약’, 체형이 고민인 사람들을 위한 ‘체형 변신약’,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들을 위한 ‘뜻뜻피부약’ 등 모두가 까불이의 개발품이다. 다만, 뜻뜻피부약의 경우, 추위를 타지 않는 대신 얼굴이 곰보가 되는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후속편에서 해독제인 ‘깜쪽주사약’을 만들기도 했다.

 

▲ 베트남전이던 당시의 시대상을 서사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했다.  ©제공:코베이옥션

 

매회 등장하는 까불이의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디어 또한 아이들에게 재미와 놀라움을 선사했다. 까불이는 약을 만들어 막대한 돈을 번다. 그가 만든 약은 동물에게 사용돼 아이들의 상상력을 그림으로 실현한다. 대표적인 것이 ‘퉁퉁약’이다. 이 약을 맞은 도마뱀은 악어가 되고, 까불이는 악어의 가죽을 팔아 많은 돈을 번다. 퉁퉁약은 고양이를 호랑이로 만들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까불이는 공작에게서 성장 호르몬을 추출해 약을 만든다. 이 약은 일반 닭에게 투여되는데, 투여한 닭은 공작새처럼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공작닭’이 된다. 까불이는 이 공작닭을 판매해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김경언 작가가 ‘약’을 비롯한 의학을 명랑만화의 소재로 사용한 데에는 그의 전공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장상용의 ‘장상용의 만화와 시대정신’(도서출판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45p, 2013)에 따르면, 김 작가는 과학, 의학 지식을 섭렵한 작가였다. 

 

그는 서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그의 형 또한 서울대학교 의대 학장을 지냈다. 김 작가는 대학 졸업 후에 잠시 고등학교에서 생물학 교사로 일했다. 과학과 의학에 관심이 많던 그가 어떻게 만화에 빠지게 된 것일까. 

 

이와 관련해 장 저자는 “(김경언 작가는) 군대에서 신동헌 화백을 만나 만화계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신동헌 화백은 대한민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을 감독한 만화가다. 

 

딱지 만화로 시작한 김경언 작가는 이후 다양한 명랑만화를 그려내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1956년 ‘만화세계’ 창간호에서 ‘칠성이’ 캐릭터를 시작으로 ‘깨막이’, ‘까불이’와 같이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창조해냈다. 그가 만든 캐릭터들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아이들의 영웅이자 꿈이었다.

 

어느덧 어린이를 위한 명랑만화 ‘의사 까불이’가 나온 지도 57년이 됐다. 50여 년이 흐른 지금 웹툰 서비스가 생활 속에 스며들면서 이제 명랑만화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만인이 즐길 수 있는 장르 만화가 됐다. 특히나 명랑만화의 흔적을 가진 일상툰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그때 그 시절 아이들의 웃음을 책임졌던 ‘까불이’를 잇는 명랑만화 속 캐릭터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100뉴스 /
조지연 기자
ksh@confa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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