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날에 장수지팡이 ‘청려장’ 주는 풍습, 원래 임금이 사직서 반려하는 용도였다고?

노인에게 지팡이(杖)를 지급하는 문화에서 살펴보는 우리 역사 이야기

조지연 기자 | 기사입력 2020/06/16 [15:31]

노인의 날에 장수지팡이 ‘청려장’ 주는 풍습, 원래 임금이 사직서 반려하는 용도였다고?

노인에게 지팡이(杖)를 지급하는 문화에서 살펴보는 우리 역사 이야기

조지연 기자 | 입력 : 2020/06/16 [15:31]

 

[백뉴스(100NEWS)=조지연 기자] 매년 10월 2일이면 노인의 날이 돌아온다. 우리나라는 1993년부터 노인의 날마다 그해 100세를 맞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대통령 명의의 청려장을 나눠준다. 2019년에는 1천 550명의 노인이 100세를 맞은 기념으로 청려장을 받았다. 

 

100세를 맞은 노인들에게 청려장을 나눠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려장은 예로부터 건강과 장수를 상징했다. 청려장이 일명 ‘장수지팡이’로 불리는 이유다. 

 

본래 청려장의 이름은 ‘중국 후한 때, 유향이란 선비가 심야에 지팡이로 땅을 치자 불빛이 환하게 일어났다.’고 하여 붙여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아주 지팡이 △홍심려 △학정초 △능쟁이 △도트라지 등 지역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청려장은 본래 자연에 있는 1년생 명아주 풀의 대로 만든다. 명아주는 최대 2~3m까지 자라는 한해살이풀이다. 명아주는 5월에 들판에 나오기 시작해서 이맘때쯤이면 지천에 퍼져있다. 어린 순은 식용 나물로 먹고, 높이 솟은 대는 지팡이 만드는 재료로 활용된다. 명아주는 전국에서 잘 자라는 풀이지만, 현대에는 육묘 재배한 명아주로 청려장을 제작하는 편이다. 

 

오늘날에는 가벼운 플라스틱이 지팡이의 재료로 주목받고 있으나 과거에는 이 명아주만 한 재료가 없었다. 명아주는 나무가 아닌 풀을 가공한 것이기에 일단 무게가 가볍다. 2019년을 기준으로 12년 동안 정부에 청려장을 납품한 광주남구시니어클럽은 홈페이지를 통해 ‘생산하는 청려장의 평균 무게가 300g에서 350g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가벼운 무게뿐만 아니라 재질이 단단하다는 점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이는 명아주를 만드는 과정이 수작업으로 섬세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명아주로 지팡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뿌리까지 통째로 푹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그늘에 말리는 과정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풀인 명아주가 나무처럼 단단해진다. 

 

▲ 광주남구시니어클럽에서 청려장을 만들기 위해 말린 명아주를 손질하는 모습  ©제공:광주남구청

 

이후, 사용자에 따라 높이를 조절한 다음 잔가지와 뿌리를 자르고 칼과 사포로 막대를 매끄럽게 가는 작업이 진행된다. 이때, 모양이 좋은 청려장을 제작하려면 명아주의 뿌리 부분이 손잡이 모양이 되도록 재배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청려장은 매년 △정부 △지자체 △기업 등을 통해 노인들에게 제공된다. 그런데 현대의 청려장 나눔 문화가 이미 수천 년에 가깝게 이어져 온 행사라는 사실, 알고 있는가. 거슬러 올라가면, 통일신라 때의 기록에서 노인에게 지팡이를 나눠주는 제도를 살펴볼 수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권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상)에 따르면, ‘봄 정월에 김유신이 퇴노하기를 청하매, (임금이) 허락하지 아니하고, 궤장을 내리었다.’고 한다. 이때, 퇴노는 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김유신은 고령을 이유로 관직에서 떠나기를 바랐으나, 임금은 허락하지 않고 ‘궤장’을 내렸다. 

 

▲ 경기도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이경석 궤장으로, 1668년 현종이 이경석에게 준 궤장이다. © 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김형수

 

궤장은 팔을 의지할 수 있는 목기와 지팡이를 의미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신라 시대에는 70세가 되면 관직을 사양하고 물러나는 제도인 ‘치사(致仕)’가 있었다. 이때, 임금은 치사하는 대신들에게 예우하는 의미에서 궤장을 지급하고,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고려 시대에는 치사 연령에 가까운 신하에게 계속 정사를 보라는 의미에서 임금이 궤장을 하사했다. 당시 △강감찬(姜邯贊) △최충(崔冲) △최충헌(崔忠獻) 등의 인물이 임금에게 궤장을 받았다.

 

조선 시대에는 들어서는 궤장 제도를 ‘경국대전’에 법제화했다. 또한, ‘국조오례의’에 궤장의 규격을 정해놨다. 경국대전에는 ‘정1품의 관원으로 나이가 70이 지났는데도 국가의 중요한 일에 관계해 치사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궤장(几杖)을 하사한다.’는 대목이 존재한다. 

 

즉, 조선 시대에는 제도상 연로한 관료들이 ‘나이를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할 때, 임금이 예의상 반려하는 용도로 궤장을 선물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궤장을 받은 고령의 관료들은 본인의 사직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을 때까지 일하기도 했다. 

 

물론 70세 전후로 궤장을 받고 얼마 후 일선에서 물러나는 신하들 또한 더러 있었고, 이 또한 허락됐다. 조선왕조실록(선조실록 162권, 선조 36년 5월 6일 신유 3번째 기사)에 따르면, 판중추부사 정탁이 70세가 넘어 아예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한다. 이에 선조는 그의 사직을 예조와 상의한 끝에 받아들이기로 한다. 

 

▲ 조선명현초상화사진첩에 실린 김유신의 초상화다. 그이전부터 궤장 제도가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장 오래된 기록은 김유신이 받은 궤장이다.

 

그렇다면 조정에서만 고령의 관료들에게 지팡이를 선물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을까. 민간에서는 일정 나이마다 청려장을 만들어 선물하는 것을 도리로 생각했다. 

 

먼저, 50세가 되었을 때 자식이 부모에게 청려장을 바쳤다. 이를 가장(家杖)이라고 부른다. 60세가 되면, 마을 차원에서 연로한 노인에게 지팡이를 선물했다. 이를 향장(鄕杖)이라고 불렀다. 

 

70세부터는 국가 차원에서 장수 노인들을 예우했다. 70살이 되는 노인들을 예우하고자 나라에서 청려장을 주는 관습인 국장(國杖)이 존재했다. 80세를 맞은 노인들에게는 임금이 직접 청려장을 하사했다. 이를 조장(朝杖)이라고 불렀다. 

 

수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 70, 80세를 넘어 100세를 맞는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2019년을 기준으로 100세를 맞은 노인은 1천 550명이다. 2018년과 비교하면 100세를 넘긴 노인이 약 200여 명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됨에 따라 앞으로는 장수하는 노인들이 더 많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이 짚고 있는 지팡이가 그들의 삶을 예우하는 하나의 역사로 인식되길 바란다.

100뉴스 /
조지연 기자
ksh@confa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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